'농업대전환' 선포…경북도, 농업 선진국 새 길 연다

입력 2023-10-19 17:00   수정 2023-10-19 20:57

반도체가 호황이던 지난 수십 년 동안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무역수지는 늘 흑자였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이후 올해 5월 말까지 무역수지 적자가 15개월간 지속됐다. 1995년 1월부터 1997년 5월까지 29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난 이후로 27년 만에 겪은 가장 긴 연속 무역적자다. 30년 가까운 무역수지 흑자 속에 가려져 있던 농업무역 적자를 네덜란드의 농업과 비교하면서 ‘농업 대전환’을 들고나온 곳이 있다. 기획재정부도, 농림축산식품부도 아닌 경상북도다.
네덜란드 농업 흑자 70조, 한국 41조원 적자
이철우 경북지사는 지난해 말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네덜란드와 한국의 농업을 비교했다. 이 지사의 분석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한국 영토의 41%에 불과하지만, 농토 면적은 네덜란드가 180만㏊, 한국이 170만㏊로 비슷하다. 그런데 2021년 기준 네덜란드의 농업무역수지는 380억달러(43조원) 흑자인 데 반해 한국은 360억달러(41조원)가 적자다. 네덜란드 농업 무역수지는 2022년에는 70조원(496억유로)으로 늘어났다.

이 지사는 지난해 1월 ‘농업 대전환’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후 이를 대통령 공약에 반영하고 6월에는 농업대전환을 위한 비전을 선포했다.

농업대전환은 ‘땅을 가진 농민이 도시 근로자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왜 더 못 살아야 하나’라는 이 지사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경북의 농업소득은 3만7000달러로 전국 1위지만 도시근로자의 64%에 불과하다. 네덜란드 농업소득 8만달러에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지사는 농업대전환 추진위원들과 네덜란드의 선진농업을 벤치마킹한 이후 지난해 10월 25일 문경 예천 구미 등 세 곳의 디지털 혁신 농업타운 시범단지를 선정했다. 농업대전환, 대한민국 농업혁신의 닻을 올렸다.
지금이 ‘농업혁신 대전환의 골든타임’
해가 갈수록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는 가운데 농업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국 농업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고 이를 국가적 아젠다로 실행에 옮긴 이 지사의 시도는 평가받을 만하다는 것이 농업 전문가들의 견해다. 임기병 경북대 농대 교수는 “농민의 절반이 65세 이상인 고령화, 평균 농지 면적이 네덜란드의 20분의 1인 조방적 영세농의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농업혁신은 요원하다”며 “지금이 농업 대전환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문경 혁신농업타운의 사례는 한국 농업의 주체와 농지의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짚은 대안으로 부상했다. 문경 영순들녘은 조방적 영세농업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영농형 사업지구다. 늘봄영농조합법인(대표 홍의식)을 중심으로 110㏊에 마을의 80 농가가 공동영농을 하는 이곳에 지주는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작목 선택과 경영은 법인이 맡는다. 기존에는 1년 동안 벼농사를 한 번만 하던 이 들녘이 하절기는 벼 대신 소득이 더 높은 콩을, 동절기는 양파와 감자를 심는 2모작 경지로 전환했다. 공동영농에 필요한 시설(선별장, 보관창고 등)과 대형 농기계(트랙터, 휴립복토기 등)가 혁신농업타운 사업비로 투입된다. 연간 13억원에 머물던 단지 내 총생산액은 대전환을 통해 45억원으로 기존보다 3배 증대되고 농가소득은 2~3배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 지사는 “밭작물을 중심으로 공동 경영하는 지역은 국내에 많지만, 법인이 책임 경영하고 수익을 확정해 배당하는 경우는 이곳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경상북도는 문경의 혁신농업타운이 성공하면 도 전체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
대구경북신공항 시대 농식품 수출 시대 대비
경상북도는 공동영농 같은 농업의 규모화와 함께 청년들이 농촌에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하기 위해 첨단과학을 기반으로 한 농업의 스마트화에도 나섰다.

농업 분야에서는 시설원예와 노지작물의 스마트화가 추진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스마트원예단지, 임대형 스마트팜, 수직농장 및 경영형 실습농장은 공공형으로 시설을 보급하고 지능형 농장(스마트팜) 온실 신개축도 지원한다. 경상북도는 스마트화율을 2030년까지 50%(4500㏊)까지 높이기로 했다. 상주에는 전국 네 곳 가운데 최대 면적인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2021년 준공돼 청년 농부의 창업보육센터이자 예비 창업 단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는 그동안 52명씩 5기의 예비 농부들이 선발돼 경영형 영농실습을 하고 있다.

노지작물 스마트화는 경북의 야심작이다. 사과의 경우 노지 스마트화로 생산량 25%, 상품화율은 9.2% 높아지고, 노동력은 54% 절감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동(사과), 의성(마늘)에서 시범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앞으로 고추도 스마트화할 계획이다. 사과 산업도 개편해 2026년까지 미래형 과원(평면형)을 270㏊까지 새로 조성할 계획이다.

축산업은 첨단화, 분뇨는 자원화하는 전환도 추진한다. 생산성이 20% 향상된 스마트축사를 2026년까지 1400호 육성하고, 악취와 오염원으로 인식되던 축분을 고체 팰릿화해 온실 연료화하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축분 고체연료를 이용하면 시설온실(오이, 2㏊)의 경우 연료비가 1억5000만원에서 7700만원으로 절반가량 절감된다.

경상북도는 이외에도 글로벌 식품산업 성장과 한류 붐에 따른 ‘식품 가공대전환’, 디지털청년농 5000명 육성, 스마트 APC(산지유통센터) 구축, 데이터 기반 유통플랫폼 구축 등 35개 과제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경북을 농업 실리콘밸리로
경북을 ‘농업 실리콘밸리’로 만들기 위한 농업 테크노파크와 농업 KAIST(농업과학기술원) 등 기술혁신을 선도하기 위한 농업교육과 지원조직의 혁신도 본격화하고 있다.

농업 테크노파크는 제조분야 벤처처럼 창업보육, 성장을 위한 연구개발과 펀딩, 마케팅 등을 체계화하는 시도다. 농업을 농민의 관점에서 벗어나 농업기업, 산업의 관점에서 육성하고 수출 산업화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이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임 교수는 “네덜란드 농업의 첨단화와 수출산업을 이끄는 푸드밸리에는 1500개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며 “네덜란드 농업의 성공 비결은 3대 이상 70~100년을 이어오며 혁신을 거듭한 농업 기업과 대학·연구소의 기술개발과 생산성 증대에 있다”고 분석했다.

경상북도가 수행한 ‘농업성장을 위한 농업 기술개발 역량 강화’ 용역에서도 ‘경북에는 우수한 ICT 인력이 많고 다양한 농특산물 생산 연구 기반이 조성된 만큼 혁신을 주도할 농업과학기술원을 설립해 세계 특히 아시아의 소비변화를 주도할 우수한 농축산물과 부가가치가 높은 가공품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경북이 주도하는 지방 시대’를 선언한 이 지사는 “대구경북신공항 시대가 열리면 첨단산업 제품뿐만 아니라 경북의 신선 농산물과 농식품이 수출산업으로 급부상할 것”이라며 “경북의 농업혁신이 대한민국 농업 대전환의 모델이 되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안동=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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